Login

[밴쿠버한인문협/수필] 정자동 구두닦이

한힘 심현섭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5-09 09:52

저녁나절 친구와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시간 여유가 있어 정자역 지하철 입구 옆에 있는 구두 수선집에서 구두를 닦기로 했다. 발을 내밀어 닦는 것이 아니라 구두를 벗어달라고 한다. 도로 옆에 반은 집이요, 반은 비닐로 천막을 쳤다. 안쪽 바닥은 다 닳은 구두밑창을 떼어내 깔아놓은 것이 두툼하게 보였다.


“오늘은 많이 추워졌네요.” 밑도 끝도 없이 말 한 마디를 던진다. 구두를 닦는 사람은 나를 볼 여지도 없이 구두만 내려다보고 말했다.


“작년에도 추웠는데 올해는 더 춥다고 하니 걱정입니다.”


“이 안에서는 불을 피우지 않나요?”


“몹시 추우면 석유곤로를 피우는데 냄새가 나고 코가 매캐해서 오래 있으면 견딜 수가 없어요.”


남자는 면 헝겊에 물을 적셔서 연방 구두를 문지르며 광을 내고 있다.


“여기서 오래 일을 하셨나봐요?”


“한 20년 됐습니다.”


“네? 이십년이요? 이 자리에서만 20년 됐다는 말씀인가요? 그때는 분당이 생기기도 전일텐데요.”


“분당은 21년전부터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는 당시에 허허벌판이었구요.”


“허허벌판에다 무슨 생각으로 구두방을 냈습니까?”


“분당 신도시가 생긴다니까 미리 자리를 잡아두려고 시작한거죠. 처음에는 하루에 2-3천원 벌기도 힘들었습니다. 고구마도 구워 팔고, 국화빵도 구어 팔고, 다른 일들을 하면서 버텼습니다. 아이들 공부시키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떻하겠습니까”


“그럼 지금처럼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언제쯤인가요?”


“7-8년쯤 전부터죠.”


아침 8시에 나와서 오후 8시까지 일한다는 남자는 작은 키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가슴 밑으로 배가 불룩하게 나와 있다. 여기서 일하다 용변은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차마 묻지를 못했다. 하루 종일 한 두 사람이 운신하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서 남자는 오랜 세월을 보냈다. 출근하기 전에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더러는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가족들과 함께 주말에는 외식도 하며 사느냐고 물었다면 아마 뺨을 맞았을 런지도 모를 일이다.


구두닦이가 다 되었다고 구두를 내밀며 남자는 말했다.


“그래도 이 짓해서 아이들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조금 더 하고나면 그만 두어야 겠지요. 제 나이가 지금 육십하고도 여덟입니다.”


놀란 표정을 감추고 나는 공연한 한 마디를 던졌다.


“예전에 아파트나 한 채 사놓지 그러셨어요.”


“허허, 아파트 살 줄 몰라 못 샀을까요, 살 돈이 어디 있어야죠.”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분양 받는다고 모델 하우스에 몰려와서 왁자지껄 할 때 이 남자는 바라보고 있었을 거다. 아파트를 사 두면 손해 날 것 같아서 못 산 것이 아니고 살 돈이 턱도 없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입에 풀칠 할 돈도 못 벌고 있는 마당에 언감생심 무슨 돈으로 아파트를 사겠는가! 아파트는 하루가 다르게 값이 치솟고 돈을 벌었다고 싱글벙글 웃으며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을 거다.


8시에 들어가려다 가도 손님이 오면 9시, 10시까지도 일을 한다고 했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오십이 다 된 나이에 구두 닦이를 시작해서 그렇게 20년을 보내고 그는 겨우 먹고 살아왔다는 이야기다. 아파트를 사놓고 기다린 사람들이 얻은 이익은 구두닦이가 노는 날도 없이 하루에 열 두 시간씩 일해서 번 돈보다도 훨씬 더 많을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빌 게이츠는 말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밴쿠버에서 남들은 거의 다 가보았다는 멕시코 캔쿤 여행은 갑작스럽게 결정이 났다. 막내 딸과 아내 세 식구가 비행기를 탄 것은 작년 12월 11일이었다. 근래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할 때는 에어 캐나다 직원 가족으로 자리가 있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빈자리가 있으려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할인 가격으로 사기는 했지만 어쨌든 공짜는 아니다. 공짜가 아니면 당당해진다. 비행기는 이륙 후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콜로라도...
한힘 심현섭
며칠 뒤 한국으로 떠난다는 김시인을 만났다.왜 떠나려 하느냐는 말에 그는 말했다.“여기는 더 이상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그의 입에서 ‘외롭다’는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그는 늘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외롭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여름 한 철에는 정원 가꾸는 일을 노는 날도 없이 하다가 낙엽이 지는 가을이 오면 어디론가 훌훌 날아가곤 하였다. 궁금해서 연락을 하면 ‘여기는 티베트입니다. 네팔입니다.’ 하다가...
한힘 심현섭
이백과 두보 2015.08.15 (토)
중국의 시문학을 이야기함에 있어 이백과 두보는 두 개의 빛나는 별이요, 두 송이의 아름다운 꽃이다. <全唐詩>에 수록된 시인만도 이천이백이요, 詩數가 사만팔천 여 편이나 되는데 이 중에서 이백의 시가 1100여수이고, 두보의 시가 1500여수에 달한다. 당송시대의 쟁쟁한 숱한 시인들 중에서도 아주 빼어난 두 시인이다.후세인들이 이백은 시선이요, 두보는 시성이라고 일컽는 것도 두 사람의 문학적인 역량이나 창작시의 방대함과 함께 후세에...
한힘 심현섭
저녁나절 친구와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시간 여유가 있어 정자역 지하철 입구 옆에 있는 구두 수선집에서 구두를 닦기로 했다. 발을 내밀어 닦는 것이 아니라 구두를 벗어달라고 한다. 도로 옆에 반은 집이요, 반은 비닐로 천막을 쳤다. 안쪽 바닥은 다 닳은 구두밑창을 떼어내 깔아놓은 것이 두툼하게 보였다.“오늘은 많이 추워졌네요.” 밑도 끝도 없이 말 한 마디를 던진다. 구두를 닦는 사람은 나를 볼 여지도 없이 구두만 내려다보고 말했다....
한힘 심현섭
밴쿠버에 봄이 왔다. 여기 저기 벚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서 봄이 왔다고 알려주고 있다. 봄은 약동의 계절이고 새로운 생명력의 탄생을 보여주는 계절이다. 봄을 맞은 밴쿠버 한인 사회에서도 새로운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그 동안 한인사회의 숙원 사업인 한인회관 문제가 기존의 회관을 개보수하여 산뜻하고 튼실한 회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캐나다 연방정부에서...
한힘 심현섭
한국민에게 6월은 아픈 전쟁의 역사를 가진 달이다. 근대화의 몸부림 속에서 채 피어나기도 전에 모멸적인 일제의 식민지하에서 거의 반세기를 보내고, 뛸 듯이 기쁜 광복을 맞은 지 다섯 해 만에 동족상잔이라는 참혹한 전쟁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한국민에게 6·25전쟁을 떠올리면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첫째 그것은 아주 참혹하고 비참한 비극적인 전쟁이었다는 것.둘째 그래서...
한힘 심현섭